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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자라며 개구쟁이들 골목대장이 되어
마을 아이들 거느리고 남의 보리밭에서 전쟁놀이에 신 났다
밭 주인의 항의를 받고 잔뜩 뿔이 나신 아버지
집에 돌아온 내게 지게 작대기가 하늘을 가르며 날아왔다
언젠가 여름방학
시집간 누나네 집에 어머니와 가며
처음으로 평안함을 느껴보았다
차라리 아버지가 없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어느 여름날 뒷밭에 팔려고 재배하는
참외를 몰래 먹으며 아버지 드리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는데
며칠 뒤 아버지는 영영 못 돌아올 길을 가셨다
그날 나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보다는 안도의 기쁨이 있었다
뒷산 참외밭에서 참외를 옷에 닦아 먹으며
처음으로 울컥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솟아올랐다
우리 아버지 남들에게는 양같이 순하였고
우리 오 남매에게는 추상같이 엄하셨다
일찍이 예수님을 만났더라면 생의 아픔을 믿음으로 이겨
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