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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허무가 뼈저린 아픔이었나
사대 독자의 과잉보호가 그를 허약하게 하였나
매일 술을 마시고 어머니가 한마디라도 하면
밥상은 허공에 나는 비행기가 되고
겨울밤은 도박판에서 밤 지새우고
집과 논밭 모두 날아갈 뻔하였다네
몇 푼 안 되는 기성회비 못 내고
학교에서 귀가하지 못하고
항상 꼴등으로 납부하며
소년은 나중에 자라서 아빠가 되면
자식의 기성회비 젤 먼저 내주리라 다짐하였다네
초등학교 때 단 한 번
아버지가 자전거 앞에 태우고 읍에 가실 때
아버지의 따뜻한 가슴을 느끼며 좋았는데
그도 잠시 어느 집에 들어가시고
나는 문앞에서 오랫동안 기다릴 때 얼마나 무서웠는지
돌아오는 길 뾰로통하여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